[※편집자주: 재계의 '메기 시대'입니다. 논어에서 시작된 메기론은 이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인재 철학이 됐습니다. 메기론의 골자는 논에 미꾸라지와 메기를 같이 둬야 미꾸라지가 더 튼튼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메기 출신이 비단 실무진은 물론, 이제 최고 경영층 자리까지 오르고 있습니다. '순혈주의'를 깨고 적극적인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해 기존 구성원들에게 긴장감을 더하겠다는 복안입니다. 연합인포맥스는 국내 주요 대기업의 외부 인재 영입 현황 및 배경 등을 정리하는 기사를 5꼭지로 정리해 송고합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김경림 기자 = '0.007%'. 삼성전자 내부 출신으로 사장에 오를 수 있는 확률이다. 골프 홀인원 확률인 '0.008%'보다도 낮다.
18일 연합인포맥스가 2014년 말부터 2023년 3분기까지 삼성전자 사장단 구성을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의 사장 수는 10년 평균 18명을 유지했다. 삼성전자 국내 사업장 전체 직원 수가 지난해 말 기준 12만1천명을 웃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장이 될 수 있는 확률은 고작 0.015%에 불과하단 것이다.
이마저도 사장이 전부 공채 출신이라는 전제를 둘 때다. 2023년 현재 기준 21명의 사장 중 외부 출신으로 사장 자리에 오른 인원은 총 9명에 이르렀다.
이전에도 삼성전자는 인재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이미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은 '삼성인의 용어'라는 책을 통해 '메기론'을 강조하며, 외부 인재를 통해 조직의 긴장감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철학을 내비치기도 했다.
강인엽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미주총괄 사장과 박용인 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장 사장이 오래된 '메기'다. 강인엽 사장의 경우 퀄컴 출신으로 2010년 삼성전자로 이동, 이후 2017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박용인 사장은 DB하이텍(구 동부하이텍)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한 후, 2014년 삼성전자의 시스템LSI사업부 전무로 오게 된다.
이재용 회장의 가석방 이후 이런 분위기는 더욱 가속됐다. 특히 2020년 '대국민사과'는 외부 인재 영입의 기점이다.
이 회장은 당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며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0년 이후에는 거의 매년 1명 이상의 외부 출신 사장이 배출되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승진한 승현준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 삼성리서치 글로벌 연구·개발(R&D) 담당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프린스턴대학교 뇌과학연구소·컴퓨터공학과 교수, 매사추세츠공대(MIT) 뇌인지학과·물리학과 교수 등을 지낸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2018년 부사장으로 영입된 이후, 그는 이례적으로 2020년 6월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으로 내정된다.
박용인 사장 역시 이듬해 말 정기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함께 사장에 오른 외부 출신으로는 김수목 삼성전자 법무실장이 있다. 김수목 사장의 경우 검사에서 김앤장 변호사로 이동한 후, 2009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후에도 이러한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첫 여성 사장이자 로레알 출신인 이영희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 구글 총괄 부사장 출신인 이원진 전 무선사업부 사장도 이재용의 '메기'로 꼽힌다. 이원진 전 사장은 이번 인사로 삼성전자를 떠나게 됐으나, 외부 출신 사장 공석은 외교부 출신의 김원경 북미총괄 대외협력팀장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메꾸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기획재정부 출신 부이사관도 부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사장 이하의 임원에서는 더욱 외부 인사 등용이 활발하다”며 “적합하고 유능한 인재 채용은 삼성의 철학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kl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