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환매 없으면 손실 대신 쿠폰 이자로 KPI 산정
은행권, 홍콩 H지수 변동에도 인기 커지자 판매 한도 완화
(서울=연합인포맥스) 이수용 기자 = 은행들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한 상품도 환매하지 않았다면 쿠폰 수익률로 핵심성과지표(KPI)를 측정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금융당국은 홍콩 H지수 ELS 투자자들이 환매를 요청해도 중도 상환을 진행하지 않아 누적 피해가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상품 판매 과정에서도 본점 차원에서 수수료 이익 확대를 주문하면서 판매 한도를 늘리는 등 전사적으로 판매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기도 했다.
◇KPI서 40% 비중 차지하는 ELT…손실 나도 수익률대로 평가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주가연계신탁(ELT) 판매를 직원 KPI에 반영하면서 30%~40% 수준의 비중을 뒀다.
금감원은 KPI 평가 비중이 높았던 만큼 일선 은행 창구에서도 ELT를 많이 판매할 유인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다만, 금감원은 은행들의 KPI 지표 산정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ELT나 펀드 등 투자 상품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익률을 KPI 지표로 삼는다.
쿠폰 이자를 5% 제공하는 ELT 상품을 팔았다면, KPI에도 쿠폰 이자인 5%가 수익률로 반영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ELT에 편입된 ELS가 손실 구간을 하회했을 때 발생한다.
ELS가 손실 구간을 하회할 경우 ELT 투자자들은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없고, 수익도 발생하지 않는다.
은행 KPI에서는 6개월, 1년 등 상환 시점의 수익률을 기준으로 KPI를 산정하는데 이 시점에서 환매 여부가 KPI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쿠폰 이자 5%를 제공하는 ELT를 팔았고, 조기상환 시점에 기초 지수가 30% 하락했다면 투자자가 이를 중도환매할 경우 -30%가 KPI에 반영되지만, ELT를 계속 보유할 경우 수익률 5%가 산정되는 구조다.
금감원은 ELT가 KPI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뿐더러 홍콩 H지수 ELT를 환매할 경우 직원 KPI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에도 이에 응하지 않아 누적 규모가 커졌다고 보고 있다.
◇’신탁 수수료 늘려라’ 본점서도 판매 드라이브
금감원은 은행권이 본점 차원에서 ELT 판매를 독려한 점도 지적했다.
은행들은 지난 2019년 말 금융소비자 이익 보호를 전제로 공모 ELS의 신탁 판매 허용을 요청했고, 당국도 총량 규제 하에서 은행의 신탁 판매를 실시했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이 12조9천억원, 하나은행이 6조2천억원, 신한은행이 5조9천억원, 우리은행이 4조2천억원, 농협은행이 3조2천억원, SC제일은행이 1조7천억원의 한도를 설정했다.
은행들은 이 한도 내에서 기초지수의 변동성이 특정 범위를 넘어설 경우 내규로 판매 한도를 줄이도록 설정했으나, ELT 판매가 호조를 보이자 변동성 구간임에도 판매 한도를 증액한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한 은행은 홍콩 H지수 변동성이 30%를 넘어설 경우 판매 한도의 50% 선에서 판매를 중단해야 했으나, 2021년 ELT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해당 한도를 80%로 높였다는 것이다.
특히 은행들은 2020년 말 내년 경영계획을 세울 당시 신탁 판매 수수료 부문을 증액하라고 계획했고, 이에 따라 지점에서도 ELT 판매를 늘렸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은 앞서 진행된 지난달 현장 및 서면 조사에서도 금융사 내부적으로 홍콩 H지수의 리스크가 있으니 판매를 축소해야 한다는 검토의견서를 확인했고, 앞으로 있을 현장 검사에서도 해당 부분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계획이다.
박충현 금감원 은행 담당 부원장보는 “본점 차원에서 신탁 판매를 독려했고, 일선 직원의 KPI 산정도 쿠폰 수익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시너지가 발생해 과도하게 많이 팔렸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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