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한국은행은 아직 물가 상승 위험에 대한 경계감을 늦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경고음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올해 말께 물가 상승률이 2%로 수렴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물가를 재차 끌어 올릴 수 있는 요인들도 상존하는 만큼 이를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섣불리 물가 안정을 자신할 경우 금융여건이 과도하게 완화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행보로 풀이된다.
17일 한은에 따르면 최창호 조사국장은 전일 블로그 글에서 “물가 상승률은 둔화 추세를 이어가겠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히 높은 가운데 농산물 가격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누적된 비용압력의 영향도 지속되는 만큼 아직 물가 리스크에 대한 경계감을 늦추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국장은 “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3% 내외에서 등락하다가 점차 낮아져 연간 전체로는 지난 11월 전망치(2.6%)에 대체로 부합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근원물가 상승률도 지난 전망경로에 부합하는 완만한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존의 전망을 수정할 이유는 아직 없지만, 경로의 이탈을 촉발할 수 있는 불확실성 요인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물가 여건은 아직은 안정적이다.
가장 큰 변수인 국제유가가 중동지역 불안에도 한은이 경제 전망에서 가정한 것보다 상당폭 낮은 수준이다. 한은은 상반기 두바이유의 평균 가격을 배럴당 86달러로 예상했다. 연간 기준은 85달러다.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지난해 12월 이후에는 80달러 아래서 형성되고 있다.
내수가 예상보다 부진해 수요측 물가 압력도 예상보다 약할 전망이다.
최 국장은 “올해 성장률은 당초 예상(2.1%)에 대체로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내수의 회복 모멘텀이 약화된 만큼 경기 개선에 대한 체감 정도는 부문별로 차별화되고 취약계층의 어려움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비는 실질소득이 점차 개선되겠지만 그간의 금리 상승 영향 등으로 회복 모멘텀이 예상보다 약하고, 건설투자의 경우에도 그간의 신규착공 감소의 영향이 가시화되면서 부진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공급측 최대 변수인 유가와 내수 수요 압력 양측 모두가 지난해 11월 한은의 기존 전망 당시보다 물가 둔화에 우호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한은이 긴장을 늦추지 않는 대목은 여전한 중동지역의 불안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의 무력 도발이 지속하면서 홍해 항로 운항에 차질이 빚어지는 중이다. 장기화할 경우 물류비 상승으로 유가에 상당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 특히 이란과 미국의 충돌로 상황이 악화할 경우에는 파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여전히 높은 농산물 가격이 변수다. 특히 사과와 귤 등 과일가격의 고공 행진이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다. 연말·연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 업체들의 가격 인상 정도 등이 변수다. 특히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누적된 비용요인을 반영해 연말·연초에, 한꺼번에 큰 폭으로 가격을 올리는 경향이 강하다.
또 오는 4월 총선 이후에 공공요금 인상이 본격화할 경우 하반기 물가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런 불안 요인이 잔존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물가가 차츰 둔화할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은 없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물가가 통화정책의 변화 시점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것이란 경계감은 미미하다.
외국계은행의 은행의 한 딜러는 “서비스가격 둔화 속도가 느릴 수는 있어 보이지만 어느 정도 예상보다 높다고 해도 더 이상 물가는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면서 “결국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결정을 한은이 추종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기관이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준이 실제 3월에 금리를 인하하면 한은은 5월, 연준이 금리 인하 시기를 5월로 늦추면 한은은 7월 정도도 보조를 맞출 것이란 인식이다.
한은은 하지만 연준을 추종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를 제어하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금통위에서 “적어도 6개월 이내에는 금리를 인하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강경한 발언을 내놨다.
최 국장은 블로그를 통해 “누적된 통화긴축의 파급영향과 이에 따른 주요국의 통화정책 기조 전환 시기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한동안 높을 것”이라면서,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jwoh